필사 - 시

어느날 갑자기 나무는 말이 없고 - 황인숙

나안 2021. 1. 12. 13:13

어느 날 갑자기 나무는 말이 없고
                                  황인숙
 
햇살 아래 졸고 있는
상냥한 눈썹, 한 잎의 풀도
그 뿌리를
어둡고 차가운 흙에
내리고 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지만 그곳이
그리워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나무는 말이 없고
생각에 잠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하나

(탄식과 허우적댐으로 떠오르게 하는)
이파리를
떨군다.
 
나무는 창백한 이마를 숙이고
몽롱히
시선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
챙강챙강 부딪히며
깊어지는 낙엽더미
아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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