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호지 민용태 우리의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것은 이 얇다란 종이 하나 북풍이 칼날을 휘둘러도 우리는 이 창호지 하나를 방패로 겨울을 난다 구름의 포를 뜬 창호지는 그러나 작은 바람결에도 곧잘 약하게 운다 실은 창호지는 눈물에 약하다 작은 눈물바람에도 가슴이 허문다 푸른 하늘에 연이 되고 싶었을까 고명한 선비의 붓 끝에 영생을 얻고 싶었을까 창호지는 연한 풀잎의 힘줄이 드러나 보인다 갈기갈기 찢기울지언정 부서지지는 않는다 차라리 상여 위에 꽃으로 필지언정 그 자리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깨어지기보다는 오히려 깃발이 되어 펄럭이며 소리치는 실은 대기의 사촌쯤 되는 우리네 하얀 마음 너의 나의 등불을 지키는 것도 실은 이 얇다란 창호지 하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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