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맑고 밝았던 태백산(2/6)

나안 2010. 2. 7. 18:18

맑고 밝다.

그야말로 명징(明澄)한 겨울 하늘이다.

문득 잠에서 깨니 새벽 4시가 조금 넘었다.

밝은 빛이 방안에 가득하다.

웬일일까?

문득 오늘이 음력 12월 23일임을 생각한다.

1년에 한번씩 돌아오는 아내 생일이라 쉽게 알 수 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하현달이 여느 보름달 못지않게 밝게 비추인다.

태백산 천제단에서 백두대간을 사방으로 조망할 수 있다는 생각에

더 이상 잠이 오지 않는다.

 

대부분은 내가 원해 산에 가지만

가끔은 산이 나를 부르고 있음을 느끼곤 한다.

오늘은...

 

잠실을 출발한 버스는 강원도 고갯마루를 휘젓다가 태백산 유일사 입구에 우리를 내려 놓는다.

지난 해와 같은 등로이고

지난 달에 이미 겨울 산에 대한 경험을 해본지라

70여명이 넘는 일행은 다들 무리없이 익숙하게 산에 오른다.

 

'우리은행'에서 떼지어 참석한 인파로 산이 북적인다.

새집걸기 등 여러가지 이벤트가 있는것 같다.

그런데 행사 제목이 "CEO와 함께하는 ..."이라는 타이틀이 붙어있다

고객과 함께하는도 아니고

직원과 함께하는 것도 아닌

CEO와 함께 하는 행사란다.

 

CEO는 항상 직원과 함께 하는데

무슨 태백산까지 와서 "CEO와 함께 하는..."이라는 타이틀을 꼭 붙여야 했을까?

 

메타세콰이어가 도열한 숲을 지나

주목 군락지에 다다른다.

푸른 잎과

때로는 울긋불긋 꽃잎

때로는 단풍으로 치장하였던 몸을 벗고

나신(裸身)으로 본성을 드러내고 있는 겨울나무들이 멋지다.

 

 

아이젠에 밟히는 "뽀드득" 눈 소리가

때로는 신음 소리였다가

때로는 깔깔웃는 웃음 소리로 들린다.

 

작년 1월 태백산행에 비해 한결 편한 점심을 먹는다.

따사로운 햇빛과 바람 한 점 없는 날씨가 두어 시간 오른 피로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한다.

사위(圍)를 조망한다.

백두대간의 중심축인만큼 동서남북으로 병풍처럼 산 줄기가 내려다 보인다.

동해의 윤곽도 아스라히 보인다.

 

무속인들의 많이 찾는 지리산, 계룡산, 태백산 중에서도 영험하기로 이름난 태백산이라니

산에 오르는 내내 태백산의 웅혼한 기운을 가슴에 담아낸다.

 

하산길에 비닐 봉지를 썰매삼아 눈썰매타는 청년들이 부럽다.

 

인적이 끊긴 태백산 눈꽃 축제장에는 아직도 얼음조각들이

지나간 손님을 그리워한다.

 

태백산의 하루는 그리 저물고

일행은 버스에 몸을 맡겨

다시 출발했던 그 자리로 돌아온다.

 

산에 오르는 이유는 내려오기 위함이고

여행의 목적은 돌아오기 위함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