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천왕봉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이원규 詩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
(하략)
스무 몇 살 때인가
지리산 종주의 기억이 아득하다.
꼭 다시 오마 약속했건만
마음 속에서만 배낭을 수십번 싸고 지리의 능선을 헤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갑시다"라는 말 한마디에 의기가 투합되어 남으로 향한다.
잔이 넘치는 것은 마지막 부은 한 방울 때문이라는 말을 떠올려본다.
내 조상들이 그리 적선(積善)했는지 알 수 없지만
1차 희망은 천왕봉 일출 보기다.
산청군 중산리를 들머리로 한다.
중산리에서 칼바위, 장터목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제석봉을 거쳐 천왕봉,
다시 법계사와 로터리대피소를 거쳐 중산리로 원점 회귀를 한다.
들머리
1박2일 동안 벌어질 일을 기대한다.
칼바위 앞
역삼각형 형태로 된 코스의 아래 꼭지점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오랫동안 카메라 세례에 무뎌졌을 만도 한데 계속 칼바위로 불려진다.
오름길 너덜지대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쌓아놓은 돌탑처럼
이들 부부에게도 큼직한 사랑 한 덩어리 올려진다.
유암폭포
장마 시작 전이기는 하나 유량이 적지 않다.
모두 우릴 반길 준비가 잘 되어 있다.
장터목대피소에서의 만찬
고생하며 올라온 삼겹살과 소주
이슬 가득 품은 한기(寒氣)와 더불어 먹는 라면 맛이 일품이다.
9시 소등
그러나 잠이 안온다.
요의를 참지 못해 잠시 밖에 나와보니 별빛이 휘황찬란하다.
일출의 장관이 기대된다.
새벽 3시
일출을 보기 위해 채비하는 소리가 부산하다.
대피소에서 천왕봉까지 1.7km
부지런히 올라가야 5시 15분 일출을 볼 수 있다.
랜턴 불 빛 희미하다.
조심조심, 그래도 서두른다.
500m 전
허기와 잠을 설친 노곤함이 몰려온다.
다시 힘을 낸다.
천왕봉에 올랐다.
일출이 시작되기전 표지석은 아직 여유가 있다.
거의 뜬 눈으로 지샌 밤을 증명하듯 모두 꿰제제하지만
1915m 정상에 있다는 사실에 위안이 된다.
일출이다.
붉은 덩어리가 솟아오른다.
장엄하다.
천왕일출과 함께 노고단의 운해가 지리 10경 중에 하나지만
천왕봉의 운해도 아름답다.
새 날이 시작되었다.
파란 하늘과 솜털같은 구름을 배경으로 인증을 남기며
표지석에서 하산 준비를 한다.
다시 올 수 있을까?
로터리대피소에서의 조식이다.
마침 산소같은여자의 생일이란다.
인스턴트이긴 하지만 우연히 준비한 아침이 미역국밥이다.
대단한 생일상이다.
햇빛 가득 머금은 무성한 산죽 사이로 여행의 기억을 갈무리한다.
다음은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