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 시

빈손으로 가는 길 - 민경교

나안 2019. 5. 7. 09:51

 

 

빈손으로 가는 길

                                   민경교

나는 이제 어디라도 갈 수 있다 
배냇저고리에 기저귀보다
좀 더 큰 옷으로 몸을 가려줄 사람만 있다면
나 빈손으로 어디라도 갈 수 있다

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무거운 욕심을 지고
하루하루를 버겁게 오르기만 하던 산
이제 벗어버리고 내려가야만 한다

낭떠러지에서 미끄러져도 좋고
굴러 떨어져도 좋다
내 어깨가 새털 같으니 찍힐 일도 없고
상처 입을 일도 없지 않겠는가

서서 못가면 양손으로
땅을 짚어가며
엉금엉금 기어서 올라온 삶의 길을 뒤돌아
이제 빈손으로 내려가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