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 시
쉼표 - 안도현
나안
2019. 6. 2. 09:10
쉼표
안도현
크다가 말아 오종종한
콩나물 같기도 하고,
연못 위에 동동 혼자 노는
새끼 오리 같기도 하고,
구멍가게 유리문에 튄
흙탕물 같기도 하고,
국립박물관에서 언뜻 본
귀고리 같기도 하고,
동무 찾아 방향을 트는
올챙이 같기도 하고,
허리가 휘어 구부정한
할머니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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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에 대하여
요즘 따라 자꾸 숨이 가쁘다.
일도 마음도, 뭔가 계속 이어지기만 하고 도무지 멈출 틈이 없다.
그런데 오늘, 우연히 읽은 안도현의 시 한 편이 나를 멈추게 했다.
「쉼표」라는 짧은 시였다.
콩나물 같기도 하고,
새끼 오리 같기도 하고,
귀고리 같기도 하고,
할머니 같기도 한 쉼표.
읽다 보니 웃음이 났다.
참 별 걸 다 쉼표에 빗대어 놓았구나 싶었는데
이상하게 그 모습들이 다 떠오르고, 그 작고 별것 아닌 것들이
왜 이리도 따뜻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문장에서 쉼표가 없으면 말이 헐떡인다.
숨을 못 쉬는 문장, 그런 건 읽기 힘들다.
살면서도 그런 적 많았지.
계속 달리기만 하다가 결국 넘어지고, 마음이 탈나고,
그제서야 아, 내가 쉼 없이 살아왔구나 깨닫게 되는 거.
나도 좀 쉼표처럼 살고 싶다.
무게도 크지도 않고, 존재도 소리 없이 작지만
읽는 이로 하여금 숨을 고르게 해주는 그런 쉼표.
아무도 알아채지 않아도 좋다.
그저 잠깐, 나를 멈춰 세우는 작은 순간이면 된다.
조금씩, 천천히, 그렇게 걸어가고 싶다.
오늘 내 마음에도 쉼표 하나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