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 시

벌레길 - 김신용

나안 2019. 6. 5. 16:45





벌레길 

김신용


산에 올라 산나물을 따다보니 알겠네.
저 벌레도 사람살이의 길을 가르쳐준다는 것을
명아주 수리취 화살나무 훗잎까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은
벌레도 먹고 있다는 것을
마치 길라잡이처럼 벌레가 먼저 먹고 있다는 것을
그동안 벌레가 먹은 잎은 벌레를 보듯 모두 버렸었다.
된장 속에서 맛있게 익은 깻잎도 벌레 자국이 있는 것은 먹지않았다.
그러나 보라, 산그늘 수풀 속에 숨어 있는 이름 모를 잎도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은 벌레가 먼저 깃들어 있다는 것을-.
무슨 징표처럼, 잠식과도 같은 자국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산 속 수풀을 헤치며 산나물을 따다보니 알겠네.
그 이름 모를 풀의 잎에 새겨져 있는 벌레 먹은 자국이
이렇게 사람살이의 지도가 된다는 것을. 그리고 지난 날
허기에 겨운 보릿고개를 넘을 때, 수풀 속 이름 모를 풀의 잎에 새겨진
그 벌레의 길을 따라 구황의 세월 견뎌왔으리라는 것을-.
내 이제야 알겠네. 사람이 먹지 못하는 것은 벌레도 먹지 않는 다는 것을
길바닥에 깔린 질경이 잎에도 그 벌레의 길이 새겨져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