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 시

일찍이 나는 - 최승자

나안 2019. 9. 22. 09:38

 

 

일찍이 나는
최승자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 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 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 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