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 시

먼 후일 - 김소월

나안 2019. 9. 30. 14:00

 

 

 

먼 후일

김소월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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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의 〈먼 후일〉은 이별을 말하고 있으나, 실은 이별하지 못한 마음을 이야기한다.
반복되는 “잊었노라”는 차라리 다짐에 가깝다.
그는 잊으려 애쓰지만, 시의 맨 마지막에서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라 고백함으로써
사실상 모든 말이 진심이 아님을 밝힌다.

이것은 애틋한 자기방어이며 동시에 사랑의 지속이다.
그리움은 속으로 깊어지고, 말은 자꾸 멀어지며,
시간은 흘러도 감정은 여전히 그때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