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 시
딸에게 - 오세영
나안
2020. 11. 16. 12:07
딸에게
오세영
가을바람 불어
허공의 빈 나뭇가지처럼 아빠는
울고 있다만 딸아
너는 무심히 예복을 고르고만 있구나
이 세상 모든 것은
붙들지 못해서 우는가 보다.
강변의 갈대는 흐르는 물을,
언덕의 풀잎은
스치는 바람을 붙들지 못해
우는 것, 그러나
뿌리침이 없었다면 그들 또한
어찌 바다에 이를 수 있었겠느냐.
붙들려 매어 있는 것치고
썩지 않는 것이란 없단다.
안간힘 써 뽑히지 않는 무는
제자리에서 썩지만
스스로 뿌리치고 땅에 떨어지는 열매는
언 땅에서도 새싹을 틔우지 않더나.
막막한 지상으로 홀로 너를 보내는 날,
아빠는 문득 뒤곁 사과나무에서
잘 익은 사과 하나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