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 시
상처1 - 마종기
나안
2020. 12. 7. 13:35
상처 1 / 마종기 1 내가 어느덧 늙은이의 나이가 되어 사랑스러운 것이 그냥 사랑스럽게 보이고 우스운 것이 거침없이 우습게 보이네 젊었던 나이의 나여 사고무친한 늙은 나를 초라하게 쳐다보는 젊은이여, 세상의 모든 일은 언제나 내 가슴에는 뻐근하게 왔다. 감동의 맥박은 쉽게 널뛰고 어디에서도 오래 쉴 자리를 편히 구할 수가 없었다. 2 그렇다. 젊었던 나이의 나여, 평생 도망가지 못하고 막혀 있는 하느님의 눈물 한 방울, 멀리 누워 있는 저 호수도 가엾게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오래 짓누르던 세월의 불면증을 몇 번이나 호수에 던져버린다. 불면증 물려받은 호수가 머리까지 온몸이 젖은 채로 잠시 눈을 뜨고 몸을 흔든다. 연한 속살은 바람에 씻겨 호수의 살결이 틈틈이 트고 가는 다리까지 떨고 있다. 3 어디였지? 내가 어느덧 늙은이의 나이가 다 되어 호수도, 바람도, 다리도 대충 냄새로만 기억이 날 뿐, 아무도 없는 곳에서 가끔 귓속의 환청의 아우성. 아무도 우리를 말릴 수 없다는 상처의 나이의 아우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