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 시

빈집 - 기형도

나안 2021. 3. 26. 16:24

빈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는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