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 시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 진은영

나안 2021. 3. 26. 16:24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진은영
 
, 놀라서 뒷걸음질 치다
맨발로 푸른 뱀의 머리를 밟다
 
슬픔
물에 불은 나무토막, 그 위로 또 비가 내린다
 
자본주의
형형색색의 어둠 혹은
바다 밑으로 뚫린 백만 킬로의 컴컴한 터널
여길 어떻게 혼자 걸어서 지나가?
 
문학
길을 잃고 흉가에서 잠들 때
멀리서 백열전구처럼 반짝이는 개구리 울음
 
시인의 독백
어둠 속에 이 소리마저 없다면
부러진 피리로 벽을 탕탕 치면서
 
혁명
눈 감을 때만 보이는 별들의 회오리
가로등 밑에서는
투명하게 보이는 잎맥의 길
 
, 일부러 뜯어본 주소 불명의 아름다운 편지
너는 그곳에 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