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 시

이마 - 허은실

나안 2021. 6. 6. 14:02

이마
                               허은실
 
타인의 손에 이마를 맡기고 있을 때
나는 조금 선량해지는 것 같아
너의 양쪽 손으로 이어진
이마와 이마의 아득한 뒤편을
나는 눈을 감고 걸어가보았다
 
이마의 크기가
손바닥의 크기와 비슷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난한 나의 이마가 부끄러워
뺨 대신 이마를 가리고 웃곤 했는데
 
세밑의 흰 밤이었다
어둡게 앓다가 문득 일어나
벙어리처럼 울었다
 
내가 오른팔을 이마에 얹고
누워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그 자세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