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 기타

사기에서 만난 말(4)

나안 2022. 5. 28. 15:57

且彊弩之極(차강노지극) 不能穿魯縞(시불능천노호)
沖風之末(충풍지말) 力不能漂鴻毛(역불능표홍모)
非初不勁(비초불경) 末力衰也(말력쇠야)
 
강력한 쇠뇌도 끝에 가서는 (아주 얇은) 노나라의 비단조차도 뚫을 수 없고, 
회오리 바람도 그 마지막 힘은 (가벼운) 기러기 깃털조차 움직일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강력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끝에 가서 힘이 쇠약해지기 때문입니다.

- 사기, 한장유열전 중
겉으로 강해 보여도 지속되지 않으면 무력함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아무리 위력 있는 쇠뇌도 마지막 힘이 다하면 얇은 천조차 뚫지 못하고,
세찬 바람도 끝자락에서는 가벼운 깃털 하나조차 흔들 수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처음의 강함이 아니라, 끝까지 유지되는 힘이다.
이는 공부, 수양, 우정, 사랑, 일 모두에 해당하는 진리인 것이다.


鑒於水者 見面之容(감어수자 견면지용)
鑒於人者 知吉與凶(감어인자 지길여흉)

물을 거울로 삼는 자는 얼굴 모습을 볼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 자는 길흉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 사기, 범저채택열전 중
"不鏡於水 鏡於人" — 물이 아닌 사람을 거울로 삼다
물은 맑을수록 자신의 모습을 뚜렷이 비춘다. 옛사람들은 그런 물을 거울 삼아 얼굴을 다듬고, 옷매무새를 바로잡았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의지한 거울은, 물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不鏡於水 鏡於人" — 물에 비추지 말고, 사람에게 비추라.
이 말은 단순한 격언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관계의 원리이다. 물은 내 얼굴을 보여주지만, 사람은 내 마음을 비춘다. 내가 누군가에게 어떻게 비치는지를 알기 위해선, 맑은 연못보다도 사람의 눈을, 사람의 말을, 사람의 반응을 살펴야 한다.

혼자만의 생각에 갇혀 살다 보면, 자신이 옳은 줄로만 믿고 산다. 그러나 사람과 마주하며 부딪히고, 때로는 질책을 받고, 때로는 위로를 들을 때, 우리는 그제야 깨닫는다. 나의 말이 다소 거칠었음을, 나의 고집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었음을, 혹은 나의 진심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었음을.
그래서 사람은 사람을 거울로 삼아야 한다.
물은 그저 외형을 보여줄 뿐, 나의 인품도, 나의 성찰도, 나의 뉘우침도 담아내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은, 특히 나보다 곧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만 엄격한 사람은 나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게 해 준다.

살다 보면 가끔,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를 모를 때가 있다.
그럴 때, 물가에 서서 얼굴을 보는 대신
좋은 사람 곁에 서서 마음을 비춰보자.
그 사람의 눈빛과 말투, 그리고 나를 대하는 태도 속에
내 삶의 결이, 내 인격의 높낮이가 오롯이 담겨 있을 것이다.


물이 아닌 사람을 거울 삼아, 내 마음을 다시 닦는다.

미불유초 선극유종(靡不有初 鮮克有終)
 
처음은 누구나 노력하지만 끝까지 계속하는 사람은 드물다

- 사기, 춘신군열전 중
무엇이든 처음은 있다. 시작은 모두들 한다.
계획도, 결심도, 다짐도 누구나 한다.
한 해의 첫날에 다이어리를 꺼내며, ‘이번엔 정말’이라는 마음으로 적어 내려간다.
그러나 끝까지 지켜낸 사람은 드물다.
“靡不有初 鮮克有終” — 시작은 누구나 하지만, 끝까지 해내는 이는 적다.

이 말은 《사기》의 ‘춘신군열전’에 등장하지만, 2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대로 유효하다.
아니, 지금 시대에는 더 절실히 다가온다.
너무 많은 정보와 자극,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운 ‘시작’을 한다.
그러나 ‘끝’을 보는 일은 흔치 않다.
조금만 어려워지면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는다.
조금만 지루해지면 흥미를 잃고, 더 새롭고 자극적인 것을 향해 간다.

무언가를 “끝까지” 한다는 건
의지보다도 더 큰 성실함과 꾸준함,
그리고 스스로를 믿고 가는 지속의 힘이 필요하다.

처음을 아름답게 하는 건 열정이지만,
끝을 아름답게 하는 건 지속된 태도다.
‘결과’는 꾸준한 사람이 가지는 보상이다.

살아가며 우리는 수없이 많은 일을 시작한다.
하지만 삶에서 진정한 무게를 가지는 일은,
그 중 ‘끝을 본 일’이다.

지금도 포기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다면
스스로에게 묻자.
“나는 시작한 만큼, 끝까지 가보았는가.”
그리고 그 끝을 마주했을 때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처음보다 더 값지고 깊은 성취의 의미를.

시작은 흔하다. 그러나 끝은 드물다.
그래서 끝까지 가는 사람은 특별하다.


反廳之謂聰, 內視之謂明, 自勝之謂强
반청지위총, 내시지위명, 자승지위강
 
돌이켜 자기 마음 속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을 총(聰)이라 하고
마음 속으로 성찰할 수 있는 것을 명(明)이라 하며,
자신을 이기는 것을 강(强, 彊)이라고 합니다.

- 사기, 상군열전 중
어릴 적 나는 총명하다는 말을 참 듣고 싶었다.
무엇이든 빨리 이해하고, 척척 해내는 그런 사람.
나이 들어서는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흔들리지 않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며 자기 길을 꾸준히 걷는 사람.

그런데 《사기》 ‘상군열전’에서는
그 총명(聰)과 강함(强)이 전혀 다른 기준에서 말해진다.
“돌이켜 자기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이 총이고,
“마음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 밝음이며,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이 강함이라 한다.

이 말 앞에서 나는 겸손해진다.
총명은 머리가 빠른 것이 아니라 내면의 목소리를 잘 듣는 능력이다.
스스로에게 묻고, 숨은 의도를 알아채고, 가만히 귀 기울이는 것.
그래서 진짜 총명한 사람은 조용하다.
먼저 나서기보다, 한걸음 물러나 자신을 먼저 살핀다.

강함도 마찬가지다.
타인을 꺾거나 큰소리를 내는 게 강함이 아니다.
자신을 이기는 것,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욕망을 절제하는 것,
더 가고 싶어도 멈추고, 포기하고 싶어도 끝까지 가는 힘
.
그 힘이 바로 강함이다.

나는 이제 총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
바깥세상의 시끄러운 소리에만 휘둘리지 않고,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
그리고 나는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유혹을 참을 수 있는 사람,
불안 앞에서 주저앉지 않는 사람.
무엇보다 스스로를 다스릴 줄 아는 사람.

총(聰), 명(明), 강(强).
세상을 이기는 사람보다,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