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 시

그 사람을 가졌는가 - 함석헌

나안 2017. 9. 7. 10:25
그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탓던 배 꺼지는 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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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가진다는 것”

살아가다 보면, 인생이란 얼마나 덧없고 외로운 길인가를 체감할 때가 많습니다.
만리길을 떠나는 순간에도, 세상이 나를 외면하는 고독 속에서도,
위험 앞에 놓인 긴박한 찰나에도,
그 어떤 이의 신뢰와 헌신을 믿고 걸어갈 수 있다면,
그는 이미 삶의 가장 위대한 선물을 받은 셈입니다.

이 시에서 말하는 "그 사람"은 연인일 수도, 친구일 수도, 스승이나 자식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단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자기 목숨보다도 너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
세상의 모든 유혹보다 너의 진실한 눈빛을 더 믿는 사람,
내가 아닌, ‘너’를 위해 웃고 눈을 감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가진 자는, 이미 외롭지 않습니다.
설령 혼자라 해도, 그 이름만 떠올리면
“그래, 괜찮다” 하고 스스로를 다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는 묻습니다.
그대는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그러면서 조용히 되묻습니다.
그대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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