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가 보면 - 이근배
시간이 스스로 알려주는 지혜들
살다 보면,
정말 넘어지지 않을 것 같은 곳에서 툭 하고 넘어질 때가 있다.
왜 그랬을까 곱씹어봐도 이유를 찾지 못한 채,
그저 ‘살다 보면 그런 거지’라고 중얼거리게 되는 순간들.
젊을 땐 이런 순간이 부끄러웠다.
넘어지지 말았어야 했고, 사랑을 말하지 말아야 했고,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
후회가 하루를 삼키고, 그 하루가 몇 날 며칠을 잡아먹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문득 깨닫는다.
그 모든 것들이 결국은 삶의 한 조각이었다는 걸.
애써 외면하려 해도 스며들어 내 안에서 쌓여간다는 걸.
이근배 시인의 「살다가 보면」은 어쩌면 그런 삶의 조각들을 조용히 받아들이게 만드는 시다.
삶을 살아내다 보면, 우리 모두는 결국 '짐승스러운 시간'을 겪게 된다.
말하지 말아야 할 때 사랑을 말하고, 떠나보내지 말아야 할 사람을 떠나보내고,
넘어지지 않아도 될 곳에서 넘어지며 흙탕물에 옷을 적시게 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면,
그런 넘어짐과 잃어버림, 어긋남이 모두 ‘지혜’가 되어 돌아온다.
그것은 책에서 배운 것도 아니고,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다.
그냥 시간이 알려준다.
특별한 노력 없이도, 어느 날 문득 ‘아, 그런 거였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중요한 건 그런 깨달음들이 내 안에서 조용히 피어날 때,
그걸 흘려보내지 않고 꼭 붙잡아 두는 것이다.
앞으로 또 남은 삶을 살아갈 나에게,
그 지혜들은 어쩌면 가장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줄 테니까.
살다 보면, 또 넘어질 것이다.
사랑을 말할 곳이 아닌 곳에서 사랑을 말할지도 모른다.
떠나보내지 말아야 할 무언가를 또 떠나보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그 모든 순간이 또 다른 지혜로 돌아온다는 것을.
그리고 그게 바로 살아가는 일의 깊이라는 것도.

살다가 보면 이근배 살다가 보면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넘어질 때가 있다 사랑을 말하지 않을 곳에서 사랑을 말할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 떠나보낼 때가 있다 떠나보내지 않을 것을 떠나보내고 어둠 속에 갇혀 짐승스런 시간을 살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