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 시

이버지의 등을 밀며 - 손택수

나안 2019. 3. 26. 10:55

아버지의 등, 아들의 눈

내 어린 시절엔 목욕탕이란 게 없었다.
면 소재지에서도 멀리 떨어진 농촌 마을,
온천이니 욕탕이니 하는 건 우리 삶의 언저리에조차 없던 말이었다.
엄마 손 잡고 여탕에 간 일도,
아버지와 나란히 목욕탕에 간 기억이 있을리 없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등을 안다.
그건 물 속에서가 아니라
들일 끝에 돌아온 마당,
땀에 젖은 옷을 벗고 상체를 드러낸 채
수도가 아닌 펌프에서 뽑아 올린 물을 받아 놓고
내게 “등 좀 시원하게 해 봐라” 하시던 그 순간에 봤다.

어린 손으로 조심스레 찬물을 끼얹으면
“어이구, 시원하다” 하시며
등을 잔뜩 활처럼 구부리셨다.
그 순간, 아버지는 온 세상의 짐을 조금 내려놓은 얼굴이었고,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 등을 바라보며,
그 무언의 말들을 하나씩 마음에 새기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단순한 등목이 아니라
아버지가 나와 교감하려 한 방식이었다.
말로는 잘 하지 못했던 당신이
온몸으로 들려주던 하루의 무게,
삶의 피로, 그리고 그 안에 숨은 다정함.

그 아버지가 이제는 없다.
시간은 흘러 나는 어느새
아버지의 나이를 훌쩍 넘긴 중년 혹은 노년이 되었고,
이제 내 아들들을 바라보는 입장이 되었다.

아이들은 다 컸다.
그들도 말이 없다.
그건 어쩌면 내 탓일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처럼 나도 말보단 눈빛과 행동으로 마음을 전하려 했고,
그러다 보니 우리 가족은
조용한 사람들만 남은 셈이다.

가끔은 아들들과 목욕탕에 함께 가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아무 말 없이 등을 밀어주며,
이 등에도 삶의 흔적이, 고단함이,
그리고 너희를 향한 미련한 사랑이
깊이 새겨져 있다는 걸 전하고 싶다.

하지만 그럴 기회는 자꾸만 미뤄지고,
어느새 주말은 각자의 약속에 흩어진다.
그저 땀에 젖은 셔츠를 벗고 돌아왔을 때
“힘들었지?” 한 마디 꺼내줄 용기조차
이제는 서투르다.

그래도 바란다.
언젠가 내 아들도
나의 등을 바라보며
말없이라도 내 고단함을, 내 사랑을
이해해주기를.

그리하여 어느 늦은 오후,
어쩌면 아주 우연히,
내 등에 손을 얹고
“시원하지?” 하고 물어주는 날이 온다면—
나는 그 순간, 아버지처럼
“어이구, 시원하다” 하고
하루의 무게를 벗듯
미소 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의 등이
내 등을 지나
내 아들의 손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세상에 말보다 깊은 사랑도 있다는 걸
우리가 서로의 등을 통해
배워가기를.






아버지의 등을 밀며
손택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번은 입속에 준비해둔 다섯 살 대신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잔뜩 성이 나서 물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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