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 기타
사기(史記)에서 만난 말(3) - 편작
나안
2021. 9. 13. 22:01

만약 성인(聖人)이 병의 징후를 예견하여 명의(名醫)로 하여금 일찍 치료하게 할 수 있다면 질병은 고칠 수 있고 몸도 구할 수 있다. 사람이 두려워하는 바는 병이 많다는 것이고, 의원이 두려워하는 바는 치료 방법이 적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섯 가지 불치의 병이 있는 것이다. 교만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면서 도리를 중시하지 않는 것이 첫째 불치병이고, 몸을 가벼이 여기고 재물을 중히 여기는 것이 둘째 불치병이다. 그리고 의식(衣食)을 절제하지 않고 적절하게 못하는 것이 셋째 불치병이며, 음양이 교착되어 혈기가 안정되지 못하는 것이 넷째 불치병이다. 그리고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 약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다섯째 불치병이며, 무당의 말을 믿고 의술을 밎지 않는 것이 여섯째 불치병이다. 이 중 하나라도 있다면 좀처럼 낫기 어려운 것이다. - 사기(史記) - 편작∙창공열전 중에서 使聖人預知微(사성인예지미) 能使良醫得蚤從事(능사랑의득소종사) 則疾可已(즉질가이), 身可活也(신가활야) 人之所病(인지소병), 病疾多(병질다) 而醫之所病(이의지소병), 病道少(병도소) 故病有六不治(고병유육불치) 驕恣不論於理(교자불론어리), 一不治也(일불치야) 輕身重財(경신중재), 二不治也(이불치야) 衣食不能適(의식불능적), 三不治也(삼불치야) 陰陽并(음양병), 藏氣不定(장기부정), 四不治也(사불치야) 形羸不能服藥(형리불능복약), 五不治也(오불치야) 信巫不信醫(신무불신의), 六不治也(육불치야) 有此一者(유차일자), 則重難治也(즉중난치야) |
사마천『사기』중에 의술의 본질을 다룬 「편작·창공열전」 속 한 대목이다
병이 들기 전에 징후를 알아차리고
그에 맞는 조치를 할 수 있다면
병은 결코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마치 현명한 정치가는 위기가 오기 전에 다스린다는 말처럼,
몸도 삶도 미리 다스리는 지혜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사람은 병이 나서야 아프다는 걸 자각하고,
심지어 그 고통 속에서도 스스로 병을 키운다.
왜냐면 병보다 무서운 것은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육불치(六不治)’라 하여,
어떤 병은 명의(名醫)도 손쓸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 여섯 가지는 결국 ‘육체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가짐과 태도의 문제’다.
- 교만하고 자기 멋대로 하며 도리를 따르지 않음
→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고칠 수 없다. - 몸은 가벼이 여기고 재물은 소중히 여김
→ 생명보다 돈이 우선인 사람은 결국 잃고서야 깨닫는다. - 식생활 절제를 못함
→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욕망은 스스로 만든 병이다. - 음양이 뒤섞이고 기운이 안정되지 않음
→ 몸과 마음이 모두 불안정한 사람은 약도 방향을 잡지 못한다. - 몸이 쇠약해 약을 받을 수 없음
→ 모든 것을 놓아버린 자에게 의술은 허공에 부는 바람이다. - 무당을 믿고 의술을 믿지 않음
→ 헛된 믿음은 치료의 길을 스스로 닫아버리는 일이다.
읽다 보면 이 육불치는
단지 병의 치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삶의 태도, 사람됨, 그리고 스스로를 대하는 자세까지 모두 포함된다.
나는 몇 번째 병에 해당하는지 돌아보게 된다.
무시하고 살던 몸의 신호,
‘나는 괜찮아’ 하며 넘겨버린 교만,
돈 몇 푼 아끼겠다고 건강을 소홀히 했던 순간들…
나도 이미 이 육불치의 외곽을 맴돌고 있었던 건 아닐까.
—
병을 피할 수 없더라도
스스로 고칠 수 없는 사람이 되지는 말자.
*“명의도 포기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절제, 작은 경청을 하자.
몸을 돌보는 건 결국
나 자신을 존중하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