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 시

두 길 - 이정하

나안 2019. 5. 4. 13:58





두 길  
이정하

내가 그를 사랑하고
그가 나를 사랑한다고 해서
우리 가는 삶의 길이
같은 것은 아니다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다


이렇듯 다른 길을
함께 가고 있다고 착각하는 데서
슬픔과 고뇌는 시작되느니


사랑하는 사람아
날 저물어 길 끊기고
집 떠난 새들도 둥지로 돌아갈 때


어디 마음 뉘일 곳 없거든
손 한 번 내밀어 보라
맞잡은 손 그 따스함으로
이 한 밤 넉넉히 지낼 수 있으니


다른 길이면 어떤가
그와 내가 손을 잡고 있는 한
두 길은 하나가 되느니
그 한 길로 영원을 가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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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걷는다는 것

사랑은 같은 길을 걷는 것이라고 믿었다.
좋아하는 것도 비슷하고, 생각하는 방향도 같고, 속도도 같아야 조화를 이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살아보니,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길을 걷는 존재였다.

이정하 시인의 시 「두 길」은 그 진실을 조용히 일깨운다.
사랑한다고 해서 같은 길을 가는 건 아니며,
사랑은 다름을 끌어안고, 따로 걷되 함께 손을 잡는 일임을 말해준다.

삶의 방향이 엇갈리는 순간에도,
지치고 흔들리는 밤에도,
잡은 손 하나가 그 길을 견디게 만든다는 사실.
함께 걷는다는 건 같은 길을 택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손을 놓지 않는 것이라는 걸, 우리는 늦게 배운다.

그래서 이제는 말하고 싶다.
다른 길이면 어떤가.
그대와 내가 손을 잡고 있다면,
그 길은 결국 하나의 길이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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