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 시

귀천 - 천상병

나안 2019. 5. 13. 11:02

 

 

귀천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시인의 「귀천」은 그의 삶과 맞닿아 읽을 때 더 깊은 울림을 준다.

 

천상병은 젊은 시절 천재 시인이라 불렸지만, 정치적 상황 속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겪고 이후 가난과 병으로 긴 세월을 힘겹게 살았다. 소주 한 병에 멸치 몇 마리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 그는 자신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시인”이라는 그의 고백은 아이러니 같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순수하게 삶을 받아들이는 그의 태도를 보여준다.

 

「귀천」은 바로 그 순수한 영혼의 결정체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라는 첫 구절은 죽음을 끝이 아닌 귀환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다. 가난과 고통 속에서도 그는 죽음을 두려움이 아닌 “돌아감”으로 받아들였다. 새벽빛, 이슬, 노을빛, 구름 같은 시어들은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생의 덧없음을 노래하면서도, 동시에 그 찰나를 빛나게 하는 존재들이다.

 

특히 마지막 구절,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는 시인의 삶 전체를 요약하는 듯하다.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도 그는 이 세상을 소풍에 비유했다. 힘들고 서글픈 순간도 있었지만, 결국 ‘아름다웠다’고 정리할 수 있는 사람. 그것이 천상병이었다.

 

그의 아내 목순옥 여사는 남편을 떠올리며 “하늘나라에 가서도 시를 쓰고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말처럼 「귀천」은 죽음 이후에도 시인 자신을 영원히 증명하는 노래가 되었다.

 

이 시를 읽으면, 나 역시 언젠가 삶의 여정을 마칠 때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천상병은 가난 속에서도 “아름다웠다”는 말을 남겼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어떤 말을 남길 수 있을까.

 

삶이 소풍이라면, 죽음은 그 소풍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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