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동강(洛東江)
조동화
1.
어린 시절 나는 엄마의 등에 업혀 처음으로 낙동강(洛東江)을 보았다.
동백(冬柏)기름 냄새 향긋한 엄마의 어깨 너머 멀리 아득히 보이던 비취빛 강물…
그러나 미처 그것이 강인 줄을 모르고, 하늘이 제 많은 자락 중에 유독 짙푸른 한 자락을 내려 산과 산 사이로 천천히 끌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2.
강을 사이에 두고 숨 가쁜 전쟁(戰爭)이 오가던 그 여름, 아버지는 먼 길을 떠나셨지. 강을 건너서 마른 황토(黃土), 먼지 이는 산굽이 길을 뚜벅뚜벅 아버지는 멀어져가셨지.
3. 학교가 파하고 나면 나는 홀로 강둑에 앉아 종무소식(終無消息)인 아버지를 그리며 종이배를 접어 띄우곤 하였다. 물결을 따라 물결 앞세우고 따라갈 수 없는 먼 곳으로 남실남실 사라져가던 하얀 종이배… 아버지는 보셨는지 몰라, 그리움을 실어 내 소년을 실어 날마다 띄워 보낸 그 많은 종이배를
4.
깊은 밤 어머니는 곧잘 강(江)으로 가셨다. 아버지의 마지막 뒷모습을 보셨던 것일까 달빛에 젖어 빛나던 어머니의 눈물, 꼭 어디론가 훌쩍 떠나가실 것만 같은 예감에 몰래 어머니의 뒤를 밟아 온 나는 또한 소리 없이 울었다. 무성한 갈대숲에 몸을 숨긴 채.
5. 오래 응석받이 손주의 든든한 울이셨던 할아버지, 당신께서는 생전에 즐겨 자주 난(蘭)을 치셨지. 눈부신 화선지 위에 늘 알맞게 휘어져 있던 묵난(墨蘭) 이파리
이제 나는 알겠네. 흰 달빛 아래 아득한 모랫벌이 한 장 화선지로 깔리는 이 밤, 비로소 고개 끄덕이며 알아보겠네. 먼 산굽이 휘어져 돌아가는 묵난(墨蘭) 이파리 하나. 한평생 휘어지고 또 휘어져서 마침내 아주 강물 위에 포개진 할아버지 그 묵난(墨蘭)을
6.
아침나절, 나는 어린것의 손을 잡고 산 위에 올라 낙동강(洛東江)을 보았다. 첩첩한 산기슭을 돌고 돌아서 아스라이 굽이치는 순은빛 먼 강물. 흰두루막 입은 할아버지의 뒤를 소복(素服)한 어머니도 따라가고 있었다. 오오, 얼마나 아프고 소중한 인연(因緣)의 모습이랴!
나는 문득 어린 것을 무등 태우고 오래오래 먼 강물을 가리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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