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 시

바람이 순하다 - 위성임

나안 2019. 2. 28. 10:05

 

속이 텅 빈 작은 바다이고 싶다
어둠 속에 지친 허전한 울음 담아
둥근 원 그려내며 꽃잎 무게 받아주는
작은 바다이고 싶다

출렁이지 않는 작은 파도이고 싶다
길 잃어 구를 때 잔잔하게 책장 넘기며
갈 길 찾아주는
잔잔한 파도이고 싶다

은은한 달빛 감싸안고
무사히 항해를 마칠 수 있도록
그대 체온 겨드랑이에 끼워 넣는
바람이 순하다

바람이 순하다 - 위성임

 

잔잔하고 고요한 바람과 바다의 이미지로 쓰인 자기 고백이자 소망

 

시인은 ‘속이 텅 빈 작은 바다’이고 싶다고 말한다.

바다는 크고 웅장한 모습이 아니라, 지친 울음을 담아 꽃잎의 무게조차 받아주는 작은 품이다. 그것은 위로와 포용의 이미지다.

 

출렁이지 않는 작은 파도이고 싶다

 

길을 잃은 이에게 조용히 책장을 넘겨주듯 방향을 알려주고, 흩어짐 속에서도 잔잔히 곁에 머무르는 존재. 여기서 파도는 격정이 아니라, 조용히 동행하는 따스한 손길이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것은 ‘순한 바람’이다. 은은한 달빛을 감싸 안으며, 누군가가 무사히 항해를 마칠 수 있도록 체온을 나누는 바람. 여기에는 함께 있음과 돌봄, 그리고 소리 없는 사랑이 묻어난다.

 

전체적으로 이 시는 ‘위로의 존재’로 살고 싶은 마음을 담고 있다. 크고 요란한 울림 대신, 소박하고 잔잔하게 곁을 채워주는 삶.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깊은 울림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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