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 시

아침밥 - 박준

나안 2019. 6. 12. 17:38

아침밥
박준

나는 죽은 사람들이 좋다. 죽은 사람들이 괜히 좋아지는 것도 병이라면 병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사람의 수보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수가 더 많으니 이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찌되었든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나보다 먼저 죽은 사람들과 모두 함께 다시 태어나고 싶다. 대신 이번에는 내가 먼저 죽고 싶다. 내가 먼저 죽어서 그들 때문에 슬퍼했던 마음들을 되갚아주고 싶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면서부터 눈물을 참다가 더운 육개장에 소주를 마시고 진미채에 맥주를 마시고 허정허정 집으로 들어가는 기분, 그리고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서야 터져나오던 눈물을 그들에게도 되돌려주고 싶다. 그렇게 울다가 잠들었다가 다시 깨어난 아침, 부은 눈과 여전히 아픈 마음과 입맛은 없지만 그래도 무엇을 좀 먹어야지 하면서 입안으로 욱여넣는 밥. 그 따뜻한 밥 한 숟가락을 그들에게 먹여 주고 싶다.

 

박준의 「아침밥」은 살아 있는 자와 이미 떠나간 자들 사이의 거리를 ‘밥 한 숟가락’이라는 따뜻한 일상으로 잇는 시이다.

시인은 죽은 사람들이 괜히 좋아진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단순한 그리움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마주했던 이별의 흔적이 남긴 마음의 결일 것이다

 

장례식장의 풍경 속에 배어 있는 육개장과 소주의 맛, 진미채와 맥주의 기운은 슬픔을 억누르려는 몸부림의 다른 이름이겠지.

하지만 결국 혼자 방문을 잠그고 터져 나오는 눈물은, 죽음을 경험한 모든 사람들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드러낸다.

 

그러나 시의 마지막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울다 잠든 뒤 깨어나, 여전히 부은 눈으로 맞이한 아침에 따뜻한 밥 한 숟가락을 입에 욱여넣는 장면은

삶이 이어지는 최소한의 의지이자 가장 소박한 위로의 형식이다.

그리고 시인은 그 밥을 나 자신이 아니라 이미 떠난 사람들에게 먹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이 바람 속에는, 살아남은 자의 미안함과 그럼에도 여전히 이어지고자 하는 사랑의 끈이 담겨 있다.

 

죽은 이를 향해 내어주는 밥 한 숟가락은, 남은 자의 눈물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작은 부활이다.

'필사 -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 호흡 - 문태준  (0) 2019.07.31
음악 - 이성복  (0) 2019.07.31
잘 익은 사과, 납작납작, 별을굽다 - 김혜순  (0) 2019.06.08
꽃씨 - 김일로  (0) 2019.06.06
고맙다는 말 대신 - 류인순  (0) 2019.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