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빛
우리는 어둠을 흔히 두려움과 연결시킨다. 보이지 않음, 알 수 없음, 숨겨진 것들의 영역. 그래서 가능한 한 멀리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김기택 시인의 시는 그 어둠을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 “자세히 보면 어둠도 환하다”는 말은 마치 삶의 진실 하나를 정직하게 꺼내어 보여주는 것 같다.
한때 나도 그랬다. 불 꺼진 방, 미래가 보이지 않던 시간, 내 마음을 가득 채운 무력감. 그 모든 어둠은 나를 삼켜버릴 듯 무서웠다. 하지만 오래도록 그 어둠 안에 머무르다 보니, 조금씩 익숙해졌다. 그리고 그 익숙함 속에서 어렴풋한 윤곽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무심코 던져놓은 물건 하나, 누군가 남기고 간 메모, 정리되지 못한 생각들. 그것들은 더 이상 혼돈이 아니라, 나를 구성하는 조각들이었다.
시인은 어둠이 고여 있는 자취방에서 “내 눈을 발견할 때까지 오래오래 어둠의 내부를 들여다”본다. 어둠을 뚫어보려는 게 아니라, 그 어둠 속에 숨어 있던 빛의 흔적을 찾아낸다. 어쩌면 그 빛은 외부에서 온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사물들 내부에 숨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삶이란 결국 그런 것 아닐까. 화려한 조명 아래서만 살아갈 수 없다. 누구나 자신의 어둠을 마주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그 어둠이 꼭 절망일 필요는 없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둠조차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환하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잡동사니가 서로를 비추며 만들어낸 은은한 광처럼, 사소한 기억과 감정들이 삶을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밝히고 있음을 우리는 때로 너무 늦게 깨닫는다.
이 시는 말한다. 어둠을 외면하지 말라고. 두려워 말고, 오래 바라보라고. 그러면 그 안에서도 빛을 발견할 수 있다고.
그리고 나도 이제야 조금씩 알겠다. 내 삶의 어둠도, 그렇게 환하게 빛나고 있었음을.

어둠도 자세히 보면 환하다
김기택
문 하나 없던 낡은 월세 자취방.
한낮에도 어둠이 빠져나가지 못하던 방.
아침에 퇴근하여 햇빛을 받고 들어가면
직사광선이 일제히 꺾이어 흩어지던 방.
잠시 눈꺼풀에 낀 잔광도
눈을 깜빡거리면 바로 어둠이 되던 방.
퀴퀴하고 걸쭉한 어둠이 항상 고여 있던 방.
방에 들어서면 눈알이 어둠속에 깊이 박혀
이리저리 굴려도 잘 돌아가지 않던 방.
어둠이 보일 때까지
어둠속의 무수한 빛과 색깔이
내 눈을 발견할 때까지
오래오래 어둠의 내부를 들여다보던 방.
자세히 보면 어둠도 환하게 보이던 방.
방안의 온갖 잡동사니들이 큰 숨을 들이쉬며
느릿느릿 어둠을 빨아들였다가
제 속에 든 빛을 오래오래 발산해주던 방.
보잘것없는 물건들이 서로 비춰주고 되비쳐주며
제 안에서 스스로 발광하는 낮은 빛을
조금씩 끊임없이 나누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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