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너편의 여자 김정란 오늘 저녁엔 한번 찬찬히 살펴보시길 봄비 스스로 내리는 저녁 무렵 혹시 당신의 양복 뒷단을 희고 찬 낯선 손이 몰래 다가와 살며시 잡아당기지는 않는지 혹시 당신 아파트 문 위에 손톱자국이 나 있지는 않은지 자동응답기에 숨죽인 흐느낌이 녹음되어 있지 않은지 당신이 시내로 들어가는 전철을 기다리면서 일간지에 코를 박고 있는 동안, 그리곤 불 밝은 전동차 안으로 망설임 없이 걸어 들어가는 동안 혹시, 건너편, 시외로 빠져나가는 플랫폼 어두운 한구석에 숨어서 한 여자가 당신을 막막히 애절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지 그녀가 가슴을 불어가는 바람을 견디느라 입술을 깨물고 울음을 참고 있지는 않은지 당신이, 문 밖으로 쫓아버린 여자 당신이, 도시에서 살기 위해서 잊어버린 여자 그 여자, 당신의 일상이 잊어버린, 그러나 어쩌면 당신의 영혼이 아직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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