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5

용서의 꽃 - 이해인

용서의 꽃 이해인 당신을 용서한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용서하지 않은 나 자신을 용서하기 힘든 날이 있습니다 무어라고 변명조차 할 수 없는 나의 부끄러움을 대신해 오늘은 당신께 고운 꽃을 보내고 싶습니다 그토록 모진 말로 나를 아프게 한 당신을 미워하는 동안 내 마음의 잿빛 하늘엔 평화의 구름 한 점 뜨지않아 몸시 괴로웠습니다 이젠 당신보다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참 이기적이지요? 나를 바로 보게 도와준 당신에게 고맙다는 말을 아직은 용기가 없어 이렇게 꽃다발로 대신하는 내 마음을 받아주십시오

필사 - 시 2021.03.26

그 슬픔이 하도 커서 - 이해인

그 슬픔이 하도 커서 사계절의 시계 위에서 세월이 가도 우리 마음속의 시계는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50분 전 국민이 통곡한 세월호의 비극은 세월을 비껴가지 못하고 멈추어져 있습니다 5년 전의 그 슬픔이 하도 커서 바닷속에 침몰하여 일어서질 못하고 있습니다 여행길이 죽음길이 되어버린 304명의 희생자들과 이들을 구조하다 목숨 잃은 이들 시신으로조차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들을 어찌 추모해야 할지 잘 알지 못해 더욱 슬픕니다 팽목항의 방파제에 펄럭이는 기다림의 깃발과 유품들이 침묵 속에 울음을 삼키고 있습니다 살릴 수 있는데도 못 살려낸 사랑하는 이들 생각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지는데 이런저런 오해들과 걸림돌들이 하도 많아 마음 놓고 울지도 못했던 유족들의 슬픔은 누가 달래줄까요 용서하려 애를 써도..

필사 - 시 2019.04.18

친구야 너는 아니 - 이해인

꽃이 되는 건 이해인 꽃이 필 때 꽃이 질 때 사실은 참 아픈거래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달아줄 때도 사실은 참 아픈거래 사람들끼리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는 것도 참 아픈거래 우리 눈에 다 보이지 않지만 우리 귀에 다 들리진 않지만 이 세상엔 아픈 것들이 참 많다고 아름답기 위해서는 눈물이 필요하다고 엄마가 혼잣말처럼 하시던 이야기가 자꾸 생각나는 날 친구야 봄비처럼 고요하게 아파도 웃으면서 너에게 가고 싶은 내 마음 너는 아니? 향기 속에 숨긴 나의 눈물이 한송이 꽃이 되는 것 너는 아니?

필사 - 시 2019.02.28

해바라기 연가 - 이해인

해바라기 연가 이해인 내 생애가 한 번뿐이듯 나의 사랑도 하나입니다 나의 임금이여 폭포처럼 쏟아져 오는 그리움에 목메어 죽을 것만 같은 열병을 앓습니다 당신 아닌 누구도 치유할 수 없는 내 불치의 병은 사랑 이 가슴 안에서 올올이 뽑은 고운 실로 당신의 비단옷을 짜겠습니다 빛나는 얼굴 눈 부시어 고개 숙이면 속으로 타서 익는 까만 꽃씨 당신께 바치는 나의 언어들 이미 하나인 우리가 더욱 하나가 될 날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나의 임금이여 드릴 것은 상처뿐이어도 어둠에 숨지지 않고 섬겨 살기 원이옵니다 민들레의 영토, 1975

필사 - 시 2017.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