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 시

목수일 하면서는 즐거웠다 - 송경동

나안 2021. 6. 6. 14:09

목수일 하면서는 즐거웠다
                           송경동
 
보슬비 오는 날
일하기엔 꿉꿉하지만 제끼기엔 아까운 날
한 공수 챙기러 공사장에 오른 사람들
 
딱딱딱 소리는 못질 소리
철그렁 소리는 형틀 바라시 소리
2인치 대못머리는 두 번에 박아야 하고
3인치 대못머리는 네 번에 박아야
답이 나오는 상황
 
손으로 일하지 않는 네가
머릿속에 쌓고 있는 세상은
얼마나 허술한 것이냐고
한 뜸 한 뜸 손으로 쌓아가지 않은
어떤 높은 물질이 있느냐고
물렁해진 내 머리를
땅땅땅 치는 소리

이 시를 읽으며 오래 잊고 있었던 손의 기억이 떠올랐다.
무언가를 '직접' 만든다는 감각,
그리하여 삶이 물리적인 질감으로 다가오던 시간들.

“목수일 하면서는 즐거웠다”는 고백은
단순히 노동의 즐거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연결되어 있는 감각,
그리고 그 감각을 잃어가는 시대에 대한 아픈 되새김처럼 느껴진다.

딱딱딱, 땅땅땅, 철그렁 —
이 시에는 소리가 많다.
소리로 기억되는 노동.
몸으로, 손으로, 땀으로 각인된 하루하루.
그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일의 보람.
그건 아마도 ‘쌓아가는’ 삶이었을 것이다.
대못 하나 제대로 박기 위해 몇 번을 내려쳐야 하는 그 과정.
그 땀방울 하나하나가 정직한 증거였다.

시인은 묻는다.
“손으로 일하지 않는 네가
머릿속에 쌓고 있는 세상은 얼마나 허술한 것이냐고.”
이 문장은 마치 내 귓가에서 직접 들려오는 듯 울렸다.
현대 사회는 점점 손으로 일하는 사람을 줄여가고,
정작 머릿속에만 쌓이는 계획과 말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그 말들은 얼마나 허술하고 공허한가.

이 시를 읽고 나면,
한 번이라도 못을 박아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그 순간의 '쾌감'과 '무게'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몸이 익히는 일의 깊이.
그 깊이는 계획서나 회의실에서 절대 알 수 없는 것이다.

송경동의 이 시는 단순한 노동 찬가가 아니다.
그는 땅 위에서 무너질 수 없는 삶을
손으로 쌓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묵직한 언어로 남겨두고 있다.
그 치는 소리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머리와 가슴을
정직하게 일깨우는 망치 소리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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