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尋隱者不遇 (심은자불우) - 賈島(가도), 魏野(위야)

나안 2021. 9. 14. 21:35

尋隱者不遇 (심은자불우)
                     賈島(가도)
松下問童子(송하문동자)
言師採藥去(언사채약거)
只在此山中(지재차산중)
雲深不知處(운심부지처)


소나무 아래서 동자에게 물으니

스승님은 약초 캐러 가셨으니
다만 이 산속에 계시련만
구름이 깊어 간 곳을 모르겠다네
이 시는 속세를 떠난 은자를 찾아갔지만 끝내 만나지 못한 상황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저 "만나지 못했다"는 아쉬움만 있는 시는 아니다.
시를 읽고 나면 도리어 그 '구름 깊은 곳 어디에선가 존재하고 있을' 은자의 형상이 마음속에 더 또렷해진다.

눈앞엔 없지만, 존재는 더 가까워진다.
 
한편으로는, ‘은자를 찾는주체는 누군가를 찾는 척하면서 결국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길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구름이 깊어 그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건,
결국 자기 마음속 중심으로 들어가는 길이 어렵고 모호하다는 뜻일지도.
스승이든, 이상이든, 내 마음의 평안이든.

 
이 시가 아름다운 건, "만나지 못함"조차 깊은 산 속 구름처럼 의미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직접 대면하지 못한 스승은 곧 삶의 어떤 진실을 상징하고, 그것을 얻기 위한 노력과 기다림이 바로 이 시의 본질이다.

 
지금 나도 어떤 은자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말없이 삶 속에서 사라지는 지혜,
혼자 고요히 살아내는 용기,
그리고 나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아가는 일.
 
그 모든 건, 여전히
"구름이 깊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 이 산 속 어딘가에 있다.

尋隱者不遇 심은자불우
魏野 위야 960-1019 北宋詩人 草堂居士


尋眞悞入 蓬萊島 심진오입봉래도
香風不動 松花路 향풍부동송화노
採芝何處 未歸來 채지하처미귀래
白雲滿地 無人掃 백운만지무인소
신선 찾아 봉래도로 잘못 들어가 보니
향기만 바람없이 싱그러운데 소나무 꽃가루 진다
지초캐러 어느 곳에 갔길래 아직 돌아오지 않는가
흰구름 땅에 가득한데 아무도 쓸지 않는구나
시인은 은자를 찾아갔지만, 끝내 만나지 못한다.
그 자리는 고요하다 못해 정적이 흐르고, 사람의 기척은 사라졌다.
향기로운 바람조차 멈춘 길, 발자취 없는 소나무 숲, 하늘에서 내려온 흰 구름만이 자리를 채운다.


여기서 은자는 단순히 숨어사는 인물이 아니라, 자연과 하나가 된 존재, 혹은 도(道)의 진리를 체득한 사람일 수 있다.
그를 찾아간다는 것은 결국 깨달음을 찾아가는 길이다.
하지만 시인은 만나지 못한 채 허공 같은 풍경과 마주한다.
그 부재 속에서 오히려 은자의 존재는 더욱 깊어진다.


불교 경전의 말처럼 “諸法無我(제법무아)”, 모든 것은 실체가 없고, 집착할수록 멀어진다.
은자와의 만남도 그러하다.
찾아가려는 집착을 내려놓을 때, 이미 은자의 자취는 구름과 바람처럼 곁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은자를 만나지 못한 시인은 허전했을까, 아니면 그 고요 속에서 더 큰 깨달음을 얻었을까

때로는 만나지 못함이야말로, 가장 큰 만남이 된다.

 

우리는 날마다 바쁘게 살아간다.

회의와 업무, 가족의 일과, 채워지지 않는 일정 속에서 스스로를 놓아줄 자리를 찾지 못한다.

그러나 가도의 「尋隱者不遇」와 위야의 「尋隱者不遇」는 오늘의 우리에게 잊힌 쉼표의 지혜를 일깨운다.

 

가도는 은자를 만나려 했지만, 동자의 대답은 간단하다.

“스승은 약초를 캐러 가셨다.”

은자는 깊은 도리를 설하지 않고, 산속에서 약초를 캐며 살아간다.

삶의 본질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작고 소박한 행위 속에 있다.

현대의 우리에게도 쉼표란 거창한 여행이나 완벽한 성취가 아니다.

단지 하루 중 잠시 멈추어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자신의 호흡을 돌아보는 순간이 곧 깊은 산중의 은자다.

 

위야의 시는 조금 다르다.

그는 신선 세계를 향해 들어가지만, 흰 구름이 가득해 은자를 만나지 못한다.

여기에는 끝없는 갈망과 그리움이 깃들어 있다.

현대인의 삶도 그렇다.

우리는 늘 더 나은 자리, 더 높은 성취를 향해 달리지만, 그 끝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구름 가득한 하늘처럼, 도달할 수 없는 이상만 쫓다가 정작 곁에 있는 쉼의 자리, 작은 만족을 놓치곤 한다.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은 결국 마음에서 비롯된다.

은자를 만나지 못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미 그 빈자리에서 쉼과 깨달음을 배우는 마음이 중요하다.

바쁜 도시 속에서도 한 걸음 물러서면, 우리 역시 구름 깊은 산속의 은자를 만나는 셈이다.

 

삶의 쉼표는 멀리 있는 은자가 아니라, 오늘 나의 마음 한가운데에서 이미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