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 시

설일(雪日) - 김남조

나안 2019. 3. 25. 13:07

 





설일(雪日) / 김남조

겨울 나무와
바람
머리채 긴 바람들은
투명한 빨래처럼
진종일 가지 끝에 걸려
나무도 바람도혼자가 아닌 게 된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삶은 언제나
은총(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사랑도 매양
섭리(攝理)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

 
이적진 말로써 풀던 마음
말로써 삭이고
얼마 더 너그러워져서 이 생명을 살자
황송한 축연이라고 알고한 세상을 누리자

 
새해의 눈시울이
순수의 얼음꽃
승천한 눈물들이
다시 땅 위에 떨구이는
백설을 담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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