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찬(晩餐) 함민복 혼자 사는 게 안쓰럽다고 반찬이 강을 건너왔네 당신 마음이 그릇이 되어 햇살처럼 강을 건너왔네 김치보다 먼저 익은 당신 마음 한 상 마음이 마음을 먹는 저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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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밥이 되는 저녁
사는 일이란 어쩌면, 마음을 주고받는 일일지도 모른다. 돈도, 말도, 눈물도 마음의 다른 얼굴일 뿐이다. 함민복 시인의 「만찬」은 그런 마음의 본질을 밥상 위에서 꺼내 보여준다.
“혼자 사는 게 안쓰럽다고 / 반찬이 강을 건너왔네”라는 구절은 물리적 거리보다 마음의 거리가 훨씬 짧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단순한 반찬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 마음이 그릇이 되어’ 건너온 것이다. 나를 향한 배려, 걱정, 그리움이 조심스레 담긴 한 상. 햇살처럼 따뜻하게 건너온 마음이다.
이 시가 아름다운 이유는, 그 마음이 조용하면서도 깊기 때문이다. "김치보다 먼저 익은 / 당신 마음 / 한 상" — 손맛보다 먼저 배인 마음맛. 발효된 사랑, 오래된 정, 그리고 익숙한 위로. 삶은 늘 풍성한 만찬을 차릴 수 없지만, 한 그릇의 정성만으로도 마음은 충분히 배부르다.
그리고 시인은 마지막에 말한다. “마음이 마음을 먹는 저녁.”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먹는다. 누군가의 마음이 나를 먹여 살린다. 이보다 더 따뜻하고 인간적인 만찬이 있을까. 말없이 반찬을 건네는 이의 마음과, 조용히 그 마음을 받아들이는 이의 저녁이, 우리를 견디게 한다.
세상은 때때로 차갑고 복잡하지만, 삶을 따뜻하게 데우는 건 언제나 이런 순간들이다. 마음이 마음을 먹는 저녁. 누군가를 떠올리며 반찬을 싸는 손, 그 반찬을 조심스레 데우는 저녁의 고요, 그리고 그 안에서 함께 먹는 듯한 외로움의 해소. 사랑은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깊게 식탁을 채운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누군가의 마음을 먹는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 마음도 누군가의 저녁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