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의 달 천양희 가시나무 울타리에 달빛 한 채 걸려 있습니다 마음이 또 생각 끝에 저뭅니다 망초꽃까지 다 피어나 들판 한 쪽이 기울 것 같은 보름밤입니다 달빛이 너무 환해서 나는 그만 어둠을 내려놓았습니다 둥글게 살지 못한 사람들이 달보고 자꾸 절을 합니다 바라보는 것이 바라는 만큼이나 간절합니다 무엇엔가 찔려본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달도 때로 빛이 꺾인다는 것을 한 달도 반 꺾이면 보름이듯이 꺾어지는 것은 무릎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마음을 들고 달빛 아래 섰습니다 들숨 속으로 들어온 달이 마음 속에 떴습니다 달빛이 가시나무 울타리를 넘어설 무렵 마음은 벌써 보름달입니다 |
천양희 시인의 시 「마음의 달」은 삶의 어둠과 빛, 상처와 치유, 기울고 차는 마음의 움직임을 고요한 달빛의 이미지에 담아낸 시다. 그 가운데 나는 문득 오래된 말 하나가 떠올랐다. “月滿則虧(월만즉휴)” — 달이 차면 반드시 기운다.
이 사자성어는 인생의 진실을 담고 있다. 모든 것이 완전해지는 순간부터 서서히 비워지기 시작한다는 사실. 꽉 찬 달이 오히려 기울기의 출발점이듯, 삶의 절정도 지속되지 않는다. 이 말은 시인의 구절 “달도 때로 빛이 꺾인다”는 문장과 정확히 겹쳐진다. 그것은 단지 자연의 이치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시 속 화자는 “가시나무 울타리에 걸린 달빛”을 바라보며, 고요한 슬픔에 젖는다. 그 슬픔은 단순한 우울이 아니라, 생각 끝에 마음이 저무는 — 즉 깊어지는 상태다. 화려하게 피어난 망초꽃이 한쪽 들판을 기울게 할 만큼 차오른 보름밤. 그러나 그 환한 달빛 앞에서, 오히려 화자는 “어둠을 내려놓는다”. 모든 것을 밝히는 빛 앞에서 오히려 자신의 어두움을 받아들이게 되는 역설. 이 또한 "월만즉휴"의 한 모습이다. 가득 찬 환함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그림자를 발견하게 된다.
“둥글게 살지 못한 사람들이 달 보고 자꾸 절을 한다”는 구절은 더 깊다. 아마 그 절은 기도이자 용서의 몸짓일 것이다. 완전하지 못한 삶, 부서진 기억, 덜 채워진 마음. 그 모든 것이 환한 달빛 아래선 더욱 도드라지기에 사람들은 절을 올리는 것 아닐까. 그 절은 간절함이자 겸허함이다.
달빛이 들숨을 타고 마음 속으로 들어올 때, 시인은 말한다 — “마음은 벌써 보름달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치유의 순간이다. 월만즉휴의 흐름을 받아들인 이의 고요한 평화. 더 이상 차지 않으려는, 더 이상 완전해지려 애쓰지 않는 마음. 비워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상태.
이 시를 읽고 나면 문득, 우리 삶도 그렇게 흘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차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기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달이 다시 차오르듯 우리 마음도 언젠가는 다시 밝아질 테니. 꺾이는 마음조차 그 자체로 빛이라는 걸, 이 시는 조용히 알려주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 밤도 한 번, 내 마음의 달이 어디쯤 있는지 조용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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