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홍성 용봉산-겨울의 문턱에서

나안 2009. 11. 16. 16:15

 홍성 용봉산, 겨울의 문턱에서

- 재경서산산악회 11월 정기산행


재경서산산악회 11월 산행이자 32차 정기산행이다. 고향인 서산 근처에 있다고 회원들이 얕본 것은 아닐까? 지난달 청송 주왕산 산행보다 참여도가 반으로 줄었다. 그래도 45인승 버스 한 대에는 빈 좌석이 없다. 덕분에 더 알찬 산행이 될 거라고 자위 해본다.

 

이제까지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는 최원호 대장님과 이승순 총무는 일찌감치 집안에 대사가 있어 산행에 참여할 수 없었는데, 유영환 회장님까지 갑자기 상가가 생겨 버스에 동행하실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 틈에 우스갯소리로 쿠데타 운운하기는 하였지만 역시 그 분들의 빈자리가 크다.

 

홍보국장인 나는 언제부터인가 버스 안에서 이런저런 안내를 맡게 되었는데, 마이크 울렁증이 심한 내가 그 때마다 느끼는 것은 허허한 부족감 뿐이었다. 나름대로는 한 가지라도 얘깃거릴 준비해서 고향의 선, 후배 회원들에게 웃음을 드리면 어떨까 고민해 보지만, 지난  시쳇말로 “마음은 서태지인데 몸은 김정구”다. 그 바람에 오히려 혹시 편안한 여행을 즐기시려는 회원들께 말 못할 불편함만 드리는 건 아닌지 항상 걱정이 된다.


버스는 이른 아침 갑자기 몰아닥친 찬 기운을 맞으며 사당역을 출발하였다. 이미 고정 행사가 된 “버스 안에서의 이벤트”를 갖는다. 처음 산행을 함께하신 분을 챙기고 인사를 나눈다. 이번에는 세 분이 새로 참석하셨다. 또 12개월 연속 개근하신 분은 회장님을 비롯하여 두 분이다. 그간 뜸하다가 이번 산행에 참석하신 분도 살펴보았더니 회원 한분이 7개월 만에 나오셨다. 한 다리만 건너면 모두 누구인지 알 수 있는 향우 모임의 특성을 살려 가장 큰 형님과 제일 막내도 챙겨보았다. 김지영 큰 형님은 제일 연장자이시면서 항상 웃음 가득한 얼굴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산행을 함께 하시는 분이다.

카페 활동을 열심히 하시는 분, 지난 달 주왕산 산행 후 감동적인 산행기를 올려주신 분 등을 소개하였다. 모든 분들에게 회장님이 준비해 준 선물을 드리면서 소감 등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이 외에도 자유발언대 코너를 마련하여 드렸더니 두 분이 마이크를 잡고 그간 맘에 담아 두셨던 덕담을 건네신다. 그리고 답사 산행 때 갈림길에 걸어 둔 “재경서산산악회” 리본을 찾는 분께 조그만 경품을 드리는 숨은 보물 찾기도 처음으로 해봤다.


한 회원은 아직까지 산행이 서툴지만 우리 산행에서는 학창시절 등교 길에서 첫사랑을 마주치는 것 같은 설레임이 느껴진다고 하신다. 처음 참석하신 분들은 낯설지 않게, 오래되신 분들께는 아직 서먹한 분들과 계속 고향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작은 밀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또 가져본다.


웃고 떠들고 얘기하는 사이 어느새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우리 소식을 듣고 반갑다고 여러 분들이 서산에서 마중까지 나와 안내도 하시고 산행도 함께 하신다.

 


홍성 용봉산 자연휴양림 표지석에서 단체사진을 남기고 산에 오른다. 1주일 전 답사 산행 때의 풍경과 사뭇 다르다. 겨울을 몰고 온 큰 비와 바람 덕분에  빛깔 고운 노랗고 붉은 단풍들은 자기 소임을 다한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용의 머리에 봉황의 몸집을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산답게 거북바위, 병풍바위, 용바위, 악귀봉, 노적봉 등 머리 속에 여러 바위와 봉우리들이 각인된다. 손에 닿을 듯 가까이 보이는 내포 평야의 가을걷이를 마친 만추 들녘, 논틀건너 수덕사가 있는 덕숭산 자락도 보인다. 충남도청 이전을 위한 공사 현장도 한눈에 들어온다. 도청이 들어서게 되면 이 산도 더 많은 인파로 몸살이 날게 분명하다.  

 

설악인지 금강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멋지다고 다소 과장은 하셨겠지만 연신 환호성을 지르는 회원님들 덕분에 내가 선택한 산은 아니지만 괜스레 기분이 우쭐해진다. 우리나라 440대 명산에 이름을 올린 이유를 알 것 같다. 작지만 아름다운 산이다.

 

칼 바람이 매섭다.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정상석 근처에 참봉 벼슬까지 하신 어느 님의 산소에다 자리를 폈다. 바람 피하기에 제격이다. 몇몇 회원들은 잽싸게 산소 앞에서 예를 갖춘다. 여기 오르게 됨을 고하면서 회원들의 무사 산행과 가정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예일게 분명하다.


내려오는 길에 철모르고 피어난 진달래꽃을 보았다. 갑작스레 찾아온 초겨울 밤을 어찌 보낼까 문득 궁금해진다.

 

 

약 네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사과밭 국화꽃 한마당”이 펼쳐지고 있는 서산시 고북면으로 이동한다. 7만㎡의 너른 사과밭에 꾸며진 국화꽃 들이 깊은 향기를 발한다. 한 철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격정의 세월을 인내한 “내 누이 같은 국화 꽃”과 함께, 축제가 끝나면 수확할 붉은 사과도 나무에 주렁주렁하다. 신종플루 영향으로 큰 행사를 치루지 못하고 입소문으로만 사람들이 찾아오게 된 것이 다소 아쉽다.


'멋진 꽃을 생산하신 님들은 얼마나 멋진 분이실까?'

'본전은 건지셨을까?'

'사과를 하나만 따 먹으면 안될까?'

‘노란 국화로 차를 담그면 좋다는데...’

 

센 바람에 펄럭이는 줄 연에 매달린 수십 개의 연 숫자만큼 모두 축제 아닌 축제를 흠씬 즐긴다. 발길을 옮겨 유적지인 해미읍성을 구경하고 낮익은 "읍성뚝배기"집에서 뜨끈한 소머리 국밥에 고향막걸리를 걸치면서 잊고 있던 허기를 달랜다.

 

오르는 길에 흰 눈발을 보았다. 첫눈이다. 이렇게 겨울이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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