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 시

업어준다는 것 - 박서영

나안 2019. 3. 11. 10:02





업어준다는 것

박서영


저수지에  빠졌던 검은 염소를 업고

노파가 방죽을 걸어가고 있다                           
등이 흠뻑 젖어들고 있다
가끔 고개를 돌려 염소와 눈을 맞추며

자장가까지 흥얼거렸다


누군가를 업어준다는 것은

희고 눈부신 그의 숨결을 듣는다는 것
그의 감취진 울음이 몸에 스며든다는 것

서로를 찌르지 않고 받아준다는 것
쿵쿵거리는 그의 심장에

등줄기가 청진기처럼 닿는다는 것


누군가를  업어준다는 것은

약국의  흐릿한 창문을 닦듯
서로의 눈동자 속에 낀 슬픔을  닦아주는 일

흩어진 영혼을 자루에 담아주는 일


사람이 짐승을 업고 긴 방죽을  걸어가고 있다
한없이 가벼워진  몸이
젖어 더욱 무거워진 몸을 업어주고 있다
울음이 불룩한 무덤에 스며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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