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 시

거룩한 식사 - 황지우

나안 2019. 5. 23. 15:00

 

 

 

거룩한 식사

황지우

나이 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 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밥을 놓고 동생과 눈 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 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세상 떠넣어주는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 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필사 -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선의 빛 - 허연  (0) 2019.05.24
혼자 먹는 밥 - 송수권  (0) 2019.05.23
다시 누군가를 - 김재진  (0) 2019.05.20
새벽에 용서를 - 김재진  (0) 2019.05.20
꿈 - 황인숙  (0) 2019.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