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 시

바람에 대하여 - 박재삼

나안 2020. 11. 14. 10:28

바람에 대하여

                             박재삼

결국은 우리는 

바람 속에서 커 왔고나 

그 바람은 먼 여행을 하고 

지금도 안 끝나고 있다

 

겨울의 아득한 들판 끝에서 

봄의 노곤한 꽃 옆에서 

여름의 숨차던 녹음 곁에서 

그리고 드디어 

이제는 빛나는 찬바람이 되어 

소슬하게 가슴에 넘치게 

수확의 열매와 함께 왔고나

 

이 바람을 나는 

나서 지금까지 

거느리고는 왔으나 

어쩔 것인가 

아직도 그 끝을 못 잡고 

어리벙벙한 가운데 살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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