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 시

아버지의 나이 - 정호승

나안 2023. 3. 12. 12:08

아버지의 나이

                         정호승

 

나는 이제 나무에 기댈 줄 알게 되었다.

나무에 기대어 흐느껴 울 줄 알게 되었다.

나무의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가

나무의 그림자가 될 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왜 나무 그늘을 찾아

지게를 내려놓고 물끄러미

나를 쳐다 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강물을 따라 흐를 줄도 알게 되었다.

강물을 따라 흘러가다가

절벽을 휘감아 돌 때가

가장 찬란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해질 무렵 아버지가 왜 강가에 지게를 내려놓고

종아리를 씻고 돌아와

내 이름을 한 번씩 불러보셨는지도 알게 되었다.

'필사 -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래(죽창가) - 김남주  (0) 2023.03.21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 이기철  (0) 2023.03.14
소주 한 병이 공짜 - 임희구  (0) 2023.03.12
봄밤 - 김수영  (0) 2023.03.12
봄 - 이성부  (0) 2023.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