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서산산악회 37차 정기산행 겸 시산제가 열리는 4월 둘째 주 토요일이다.
일주일 전부터 예보된 주말 날씨가 오락가락하더니
당일 아침 하늘은 온통 찡그려있다.
행여 비가 내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났지만 금방 잊어버렸다.
안양에서 과천을 지나 남태령을 넘어 사당역으로 향한다.
넘어가는 언덕에 활짝 핀 진달래며 개나리가 보인다.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일찍 도착한 회원들은 날씨에 대한 걱정들은 애초에 없었는지 모두들 밝은 표정만 가득하다.
7순이 다되었다고 하면 서운하실 터이고 60대 후반 형님, 누이에서부터
20대의 막내 회원까지 130명이 넘는 인원수 많은 만큼 연령대도 다양하다.
연륜이 쌓여감에 비례하여 애초 신청자 대비 출석률도 갈수록 높아지고
예정됐던 출발 시간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서해대교를 건너 행담도를 지날 때면 이미 고향에 다다른 느낌이 든다.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잠실에서 출발한 팀과 조우를 한다.
날씨로 행락객이 줄은 덕분에 도착 시각도 오차가 크지 않다.
선발대가 미리 팔봉산 입구에 시산제 준비를 다 해놓았다.
시산제 플래카드며
다음카페에서 새로 경품으로 지급 받은 산악회 플래카드가 눈을 즐겁게 해준다.
인근의 많은 분들도 격려 및 환영을 하신다.
시산제가 시작된다.
간단한 인사와 함께 팔봉산 신령의 기운을 받아
한해 무사 산행과 고향의 안녕을 기원하는 예를 갖춘다.
시산제는 대자연에 대한 경건한 마음을 가지면서
한편으로는 회원들의 화합과 단결을 다지는 행사다.
정돈호 부대장의 우렁찬 목소리로 산악인 선서가 낭독된다.
100자로 구성되어 있다 하여 산악인 100자 선서라고도 불리며
"고지가 바로 저긴데"라는 시로 유명한 노산 이은상 선생이 만들었다고 한다.
산악인은 무궁한 세계를 탐색한다.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정열과 협동으로 온갖 고난을 극복할 뿐
언제나 절망도 포기도 없다.
산악인은 대자연에 동화되어야 한다.
아무런 속임도 꾸밈도 없이
다만 자유, 평화, 사랑의 참 세계를 향한
행진이 있을 따름이다.
이어 안전 산행과 회원들이 우정과 사랑으로 뭉치게 해달라는 축문을 최원호 대장이 낭독한다.
계속하여 순서대로 이승순 총무의 진행으로 익숙하게 제를 지낸다.
어느덧 지역 축제로 승화되는 느낌이다.
초헌관이면서 카리스마 넘치는 유영환 산악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예정된 행사는 큰 탈 없이 잘 치뤄졌고
모처럼 밥을 많이 먹은 돼지머리는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았다.
소지와 음복, 철상 까지 마친 회원들은 시골 잔치처럼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발적으로 임무를 맡아
여성 회원들을 중심으로 솜씨좋게 차림상을 준비한다.
제수 음식으로 빠지지 않는 떡, 머리고기, 여러 가지 과일에
고향 막걸리는 물론 제철을 맞은 갱개미(간자미) 무침까지 풍성한 상차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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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껏 예를 갖추고 각자 바라는 바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무사 산행과 가정의 행복, 고향의 발전 대개 이 범주가 아닐까?
제를 마친 회원들이 지나가는 등산객이며 환영나온 일행들과 막걸리 잔을 나눈다.
가랑비가 잠시 오락가락 하였지만
회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팔봉산에 오르면서 작년 시산제를 겸한 식목행사 때 심은 기념식수 앞에서 1년 전을 회상해 본다.
팔봉산(361.5m)은 금북정맥에서 분기한 지능선의 한 줄기에 있다.
서산시 팔봉면에 소재하며 8개의 바위봉우리가 이어진 산이다.
400m도 안되는 낮은 산이지만 아기자기한 바위와 조망이 일품이다.
정상에 오르면 해안국립공원인 태안반도와 가로림만, 태안의 백화산, 만리포 일대가 내려다보이며,
1봉의 정상은 안부에서 5분 거리로 1봉 일대는 바위로 이루어졌다.
3봉은 소나무숲으로 된 능선이 평탄하게 시작하여 비탈로 이어지며
깍아 지른 듯한 벼랑길, 암벽, 바위산에 통천문 등 다양한 볼거리도 있다.
팔봉산은 산의 형세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9개 마을을 품에 안은 듯이 정기있게 솟아 있으며,
산의 명칭은 여덟 개의 봉우리가 줄지어 있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맑은 공기와 수려한 산세가 절경인 그야말로 내 고향의 명산이다.
1봉과 2봉 사이 절터에는 작년에 우리가 심은 매실나무 단지가 있다.
“팔봉산을 지키는 사람들” 등 인근에 계시는 분들이
주기적으로 가꿔주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터라 1년 사이에 얼마나 잘 자랐는지 무척 궁금하였다.
작년 식목 행사에 참석했던 분은 물론 많은 분들이 들러 나무 심던 얘기들을 나눈다.
벌써 많이 자란 매실나무를 보고 시간의 흐름을 다시 느껴본다.
내년에는 매실이 열리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고도 하였다.
서정예 님도 작년에 심은 나무를 찾으며 이름표를 붙여 놓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한다.
다른 때와 달리 길지 않고 낙오될 염려가 없는 산행이라
후미 대장이라는 부담이 적은 탓에 정돈호 선두 대장과 김명재 후미대장이
자기 할 일도 까맣게 잊고 함께 편히 놀고, 쉬고, 걷는다.
1봉에서 바라 본 2봉, 3봉의 모습이 가슴을 꿈틀거리게 한다.
산에 올라 하늘을 올려다보며 희망을 느끼고,
옆을 보면서 내 이웃의 숨소리를 느끼고,
또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나보다 힘겨워 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마음가짐을 갖곤 한다
가로림만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1봉과
그 위에서 사방을 조망하고 있는 산 벗 하나가 개미처럼 느껴진다.
카메라를 가지고 온 회원들은 좀 더 맑았으면 더 좋으련만 하는 아쉬움과 함께
그래도 황사가 심한 이 계절에 이 정도도 감지덕지야 하면서
가로림만을 끼고 있는 평화로운 봄 들녘을 렌즈에 담는다.
급경사의 계단을 올라온 미소공주의 얼굴에서는 미소 보다는 진지함이 묻어있다.
산행에 참여한 이후 늘 신선한 충격과 또한 굳은 수고를 아끼지 않는 찬우와 희석이도 굵은 웃음을 토해낸다.
해발 360여 미터가 넘는 산정상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며 큰 숨을 들이킨다.
예년이었다면 벌써 진달래가 만개하였을텐데
올 봄
큰 사건만큼이나 고르지 못한 일기로
아직 크게 망울을 터뜨리지는 못했다.
그 와중에도 성질 급한 놈들은 자기 속살을 내밀어 버렸다.
하산 길에는 진달래며 야생화들이 제법 피었다.
새로 가입한 아랫가재 황학성 님은 어디론가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야생화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모 카페를 운영하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중이란다.
몇 마디 나눠보니 필자와 초등학교 때 한 반였던 친구의 오빠란다.
진달래 꽃 앞에서 한 여인이 포즈를 잡는다.
문득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오늘 큰 선물까지 협찬한 다막촌안개꽃 정돈호 부부도 나란히 꽃 앞에 선다.
선물 덕에 더 푸짐한 행사가 되었다는 큰 형님들의 칭찬이 있어 친구인 나도 어깨가 으쓱해진다.
내려오는 길에 만난 성연면이 고향이라는 올해 69세인 전미연 회원님은
어렸을 적 숱하게 바라보던 팔봉산을 이제 70이 다되어 오르게 되어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다면서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내게 고맙다는 말을 계속하셨다.
산행은 이렇게 끝났으나 그게 끝은 아니었다.
날머리 입구에 자리잡은 "꼼방울가든"에 대부분의 회원들이 도착하여 산행 후 뒤풀이가 시작되고 있었다.
신•구 재경서산향우회장님들이 협찬한 돼지 한 마리의 희생이 있었다.
모처럼 맛보는 고향 밑반찬에 갓 잡은 돼지를 끓인 찌개하며
숯불에 구운 바베큐 파티가 이어졌다.
이미 공중파 광고로도 많이 나가고 있는 고향산 “뜸부기쌀”이며 육쪽마늘 등
협찬 받은 선물도 많이 있어 추첨을 통해 나눠주다 보니 웃음 꽃이 끊이질 않는다.
당초엔 벚꽃으로 유명한 운산면 소재 삼화목장 길에서 벚꽃 감상 후 상경할 계획이었으나
진달래가 늦게 개화하는 이유처럼 벚꽃도 계절의 온도를 느껴
아직 개화를 미루고 있다하여 급히 계획을 수정하였다.
서산의 재래시장인 동부시장 투어로 목적지를 변경한 아이디어가 좋았다.
재래 시장을 살리자는 거창한 표어가 있는 행사가 아니라,
모처럼 흙과 바다 내음이 물씬 풍기는 고향의 전통 시장을
잠시라도 들러보는 일이 매우 뜻 깊다고 생각하였다. 덕
분에 제철을 맞은 쭈꾸미와 갱개미 무침 등 산지에서 직접 맛보는 즐거움을 느꼈다.
어느 회원은 이 시장에 들를 때면 서울에서는 구하기 힘든 감태를 꼭 사간다며 구운 감태를 보여준다.
감태는 오염되지 않은 갯벌에서만 자라고
약간 달면서 쌉쌀한 맛으로 봄에 입맛을 돋우며, 노화방지와 당뇨, 고지혈증에 좋다고 자랑을 늘어 놓았다.
사투리로 시끌벅적한 시장을 돌면서
“산을 통하여 이웃을 사랑하고 고향을 사랑하자”는 우리 산악회 구호가 새삼 떠올랐다.
웃고 즐기는 사이
뉘엿뉘엿 날은 저물어
각자 고향의 체온과 봄 기운을 가슴 속에 담고
일행은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에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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