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 시

슬픔은 우리 몸에서 무슨 일을 할까? - 김경주

나안 2021. 3. 7. 10:50

슬픔은 우리 몸에서 무슨 일을 할까
                                        김경주
 
물고기는 물을
흘러가게 하고
 
구름은 하늘을
흘러가게 하고
 
꽃은
바람을 흘러가게 한다
 
하지만
슬픔은
내 몸에서 무슨 일을 하는 걸까?
 
그 일을 오래 슬퍼하다 보니
 
물고기는 침을 흘리며
구름으로 흘러가고
햇볕은 살이 부서져
바람에 기대어 떠다니고
 
꽃은 하늘이
자신을 버리게 내버려 두었다
 
슬픔이 내 몸에서 하는 일은
슬픔을 지나가게 하는 일이라는 생각
 
자신을 지나가기 위해
슬픔은 내 몸을 잠시 빌려 산다
 
어린 물고기 몇 내 몸을 지나가고
구름과 하늘과 꽃이 몸을 지나갈 때마다
무언가 슬펐던 이유다
 
슬픔은 내 몸속에서 가장 많이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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