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 시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 이상국

나안 2021. 3. 7. 10:51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이상국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부엌에서 밥이 잦고 찌개가 끓는동안
헐렁한 옷을 입고 아이들과 뒹굴며 장난을 치자
나는 벌 서듯 너무 밖으로만 돌았다
어떤 날은 일찍 돌아가는 게
세상에 지는 것 같아서
길에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렸고
또 어떤 날은 상처를 감추거나
눈물자국을 안 보이려고
온몸에 어둠을 바르고 돌아가기도했다.
그러나 이제는 일찍 돌아가자
골목길 감나무에게 수고 한다고 아는 체를 하고
언제나 바쁜 슈퍼집 아저씨에게도
이사온 사람처럼 인사를 하자
오늘은 일찍 돌아가서
아내가 부엌에서 소금으로 간을 맞추듯
어둠이 세상 골고루 스며들면
불은있는대로 켜놓고
숟가락을 부딪치며 저녁을 먹자

 

'필사 -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버지의 꼬리 - 안상학  (0) 2021.03.07
북한강 기슭에서 - 고정희  (0) 2021.03.07
패랭이꽃 - 류시화  (0) 2021.03.07
슬픔은 우리 몸에서 무슨 일을 할까? - 김경주  (0) 2021.03.07
군집 - 이훤  (0) 2021.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