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 시

사라진 동화마을 - 반칠환

나안 2021. 5. 29. 13:38

사라진 동화 마을
                              반칠환
 
더 이상 불순한 상상을 금하겠다
달에는 이제 토끼가 살지 않는다, 알겠느냐
물 없는 계곡에 눈먼 선녀가 목욕을 해도
지게꾼에게 옷을 물어다 줄 사슴은 없느니라
아무도 호랑이에게 쫓겨 나무 위로 올라갈 일이 없을 것이며
나무 위에 오른들 더 이상 삭은 동아줄도 내려오지 않느니라
흥부전 이후, 또다시 빈민가에 박씨를 물고 오는 제비가 있을 것이며
소녀 가장이 밑 없는 독에 물을 부은들 어디 두꺼비 한 마리가 있더냐
이 땅엔 더 이상 여의주가 남아 있지 않나니,
한때 지구 자체가 푸른 여의주였음을 알 턱이 없는 너희들이
삼급수에서 비닐 봉다리 뒤집어쓴 용이 승천하길 바라느냐
자아, 더 이상 철부지 유아들을 어지럽히는 모든 동화책의 출판을 금한다
아울러, 덧없이 붉은 네온을 깜박이는 자들이여
쓸데없는 기도를 금한다
하느님은 현세의 간빙기 동안 취침중이니
절대 교회문을 시끄럽게 두들기지 말거라
너희가 부지런히 종말을 완성할 때 눈을 뜨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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