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 시

찔레 - 문정희

나안 2023. 6. 4. 11:49

찔레

           문정희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그리운 가슴 가만히 열어

한 그루

찔레로 서 있고 싶다.

 

사랑하던 그 사람

조금만 더 다가서면

서로 꽃이 되었을 이름

오늘은

송이송이 흰 찔레꽃으로 피워 놓고

 

먼 여행에서 돌아와

이슬을 털 듯 추억을 털며

초록 속에 가득히 서 있고 싶다.

 

그대 사랑하는 동안

내겐 우는 날이 많았었다.

 

아픔이 출렁거려

늘 말을 잃어 갔다.

 

오늘은 그 아픔조차

예쁘고 뾰족한 가시로

꽃 속에 매달고

 

슬퍼하지 말고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사랑으로 서 있고 싶다.

'필사 -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구 - 도종환  (0) 2023.10.04
폭포_김수영  (0) 2023.10.04
두고 온 집 - 나희덕  (0) 2023.05.14
떨림 - 안치환  (0) 2023.05.14
또 그렇게 봄날은 간다 - 이재무  (0)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