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 기타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 김종삼

나안 2017. 11. 23. 10:16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물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아닌 시인이라고.

 

엊그제 헌법재판소장 청문회에서 후보자가 낭독했다해서 알게 된 시

누군가 나에게 시가 뭐냐고 묻지는 않겠지만

누군가 나에게 너는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뭐라 대답할까 갑자기 막막해질 것 같다.

 

오래 묵은 명함을 정리해본다.

명함의 주인 일부는 회사가 바뀌었든지

아니면 그만 두었든지

아니면 011, 017 등 철지난 번호로 남아 있거나

개중에 몇은 이승의 사람들이 아닌 경우도 있었고

누군지 가물가물한 경우들은 모두 버린다.

그런다하여 그 주인들이 오롯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

 

그런데 나도 명함 속에 새겨진 이름과 "나"를 동일시하며

한 세월을 대부분 허송했겠지  

 

지금 누군가 나에게 너는 누구냐 묻는다면

지난 날 정신줄 놓고 살아온 부끄러운 젊은 시절을 들킬 것 같다.

 

누군가 나에게 묻기 전에

내가 먼저 물어봐야겠다.

 

넌 누구냐?

시가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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