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물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아닌 시인이라고.

엊그제 헌법재판소장 청문회에서 후보자가 낭독했다해서 알게 된 시
누군가 나에게 시가 뭐냐고 묻지는 않겠지만
누군가 나에게 너는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뭐라 대답할까 갑자기 막막해질 것 같다.
오래 묵은 명함을 정리해본다.
명함의 주인 일부는 회사가 바뀌었든지
아니면 그만 두었든지
아니면 011, 017 등 철지난 번호로 남아 있거나
개중에 몇은 이승의 사람들이 아닌 경우도 있었고
누군지 가물가물한 경우들은 모두 버린다.
그런다하여 그 주인들이 오롯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
그런데 나도 명함 속에 새겨진 이름과 "나"를 동일시하며
한 세월을 대부분 허송했겠지
지금 누군가 나에게 너는 누구냐 묻는다면
지난 날 정신줄 놓고 살아온 부끄러운 젊은 시절을 들킬 것 같다.
누군가 나에게 묻기 전에
내가 먼저 물어봐야겠다.
넌 누구냐?
시가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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