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서로 물길이 튼다
....
마종기 시인의 "우화의 강"이다.
어제 TV 리모콘 버튼을 누르다가
"휴식"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에서
어느 출연자의 "신뢰할 수 있는 익명"이라는 표현이 귀에 들어 왔다.
배우자나 동료
혹은 잘 알고있는 지인들과 쉽게 맘 열고 대화할 수 없는 것도
"신뢰할 수 있는 익명"과는
쉽게 속마음을 털어 놓기도 하고
거기서 큰 위안과 휴식을 얻기도 한다고 하였다.
시의 제목에서 "우화"는 "偶話"인지 "寓話"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두 사람이 서로 마주하여 이야기한다는 뜻인
우화(偶話)가 맞는 것 같다.
가끔은 "신뢰할 수 있는 익명"들과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것도
스스로 마음의 안식을 얻는 한가지 방법이 되는 것 같다.
우화의 강 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 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결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
유장(悠長)한 정성의 물길에서
"노요지마력(路遙知馬力)이요
일구견인심(日久見人心)이라"
를 떠올려 본다.
길이 멀어야 말의 힘을 알 수가 있고,
오랫동안 겪어보아야 남의 마음을 알 수 있다
모든게 한번에 얻어지는 것은 없고
오로지 시간과 정성을 함께 해야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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