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우화의 강 - 마종기

나안 2019. 6. 4. 14:12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서로 물길이 튼다

....

마종기 시인의 "우화의 강"이다.

 

어제 TV 리모콘 버튼을 누르다가

"휴식"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에서

어느 출연자의 "신뢰할 수 있는 익명"이라는 표현이 귀에 들어 왔다.

배우자나 동료

혹은 잘 알고있는 지인들과 쉽게 맘 열고 대화할 수 없는 것도

"신뢰할 수 있는 익명"과는 

쉽게 속마음을 털어 놓기도 하고

거기서 큰 위안과 휴식을 얻기도 한다고 하였다.

 

시의 제목에서 "우화"는 "偶話"인지 "寓話"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두 사람이 서로 마주하여 이야기한다는 뜻인

우화(偶話)가 맞는 것 같다.

 

가끔은 "신뢰할 수 있는 익명"들과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것도

스스로 마음의 안식을 얻는 한가지 방법이 되는 것 같다.












우화의 강
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 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결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 친하고 싶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

 

 

 

유장(悠長)한 정성의 물길에서

 

"노요지마력(路遙知馬力)이요 

일구견인심(日久見人心)이라"

 

를 떠올려 본다.

 

길이 멀어야 말의 힘을 알 수가 있고,

오랫동안 겪어보아야 남의 마음을 알 수 있다

 

모든게 한번에 얻어지는 것은 없고

오로지 시간과 정성을 함께 해야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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