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 - 신경림
오랜만에 팥죽을 먹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을 들었다. 그 작은 갈망이 충족되자 마음의 안쪽에 평안이 깃든다. 머리칼이 어느덧 희끗희끗해졌건만 나는 아직 양을 길러본 적이 없다. 고원을 오른 적도 없고,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건넌 적도 없다. 젊은 날의 방황과 사업, 그리고 책 몇권을 썼다. 늙는다는 건 서글픈 일이다. 내 무릎 관절은 삐걱거리고, 피부엔 잔주름과 점들이 늘었다. 내 안에서 탕약(湯藥)처럼 끓던 갈망은 덧없이 사그라졌다. 젊은 날엔 대단한 것을 욕망하고 거머쥐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었지만 삶이 풍성해지는 것은 무엇을 더 많이 해서가 아니다. 무엇을 하지 않음으로써 삶은 오히려 풍성해진다. 욕심을 덜어내고 어리석음을 피하며, 소박한 것에서 즐거움을 누리는 것 그 자체가 행복이다! 나이..